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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소식

39. [성광진] 학교의 수평적 문화가 교육 개혁의 시작이자 끝
  •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6-05-09
  • 조회수 : 594

 

신발장 이름도 교장-교감-행정실장 순서

 

현관에 들어서니 신발장에 이름을 새로 붙이고 있다. 행정실장 이름을 교감 다음 차례에 오도록 붙였다. 이전에는 교사들과 같이 경력 차례로 붙였는데, 새로 온 행정실장은 이 같은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직원을 시켜 위치를 변경한 것은 실장이라는 직위가 평교사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의도이리라.

 

하기는 모든 학교의 현관 신발장의 차례는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맨 위로부터 교장, 교감, 행정실장의 자리가 놓이고 다른 교직원들은 경력 순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동안 근무했던 모든 학교가 똑같았다. 다만 이 학교는 행정실장도 경력 순으로 놓였던 점이 달랐다. 그리고 주차장에도 학교장, 교감, 행정실장의 자리를 표시해 둔다. 심지어는 교직원회의에 앉는 좌석마저 정해져 있고, 이것은 학교 식당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학교장과 교감의 자리를 놔두고 자리를 잡는 것이 불문율처럼 보인다. 회식자리는 어떠한가? 늘 그렇듯이 학교장이 맨 늦게 등장하고 교사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일어나 영접하거나 엉거주춤 서 있는 꼴을 보여야 하는 것이 변함없는 풍경이 되었다.

 

이는 학교가 봉건적 의식에 더해 수직적 관료화의 생각에 사로잡힌 결과로 보인다. 이런 의식이 지금보다 더하던 시절, 학생들의 키 높이 순으로 번호를 주어 키가 큰 아이들이 앞에 서고 작은 아이들 차례로 높이를 맞추었던 학생조회가 지금도 아련하다. 높은 조회대에서 학교장이 일장 훈시를 하고 교사들은 학생들의 앞에 서서 줄을 맞추라고 연신 주의를 주던 풍경 말이다.

 

이러한 학생과 교사의 수직적 관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교단 없애기였다. 학생들보다 높게 서기 위한 단을 만들어 앞에 놓고, 교사들은 그 위에 올라 아이들을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 교육의 잔재였던 이 교단은 90년대 들어서서 없어지고 말았다. 물론 아직도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남아있지만 대체로 사라졌다고 보는 게 옳다. 그것은 학생과의 만남에서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사고를 벗어나 수평적 사고를 유도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교단만 사라졌을 뿐이지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교직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높은 교단이 없어져도 의식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달라졌다면 오늘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경어체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교사들은 억압적으로 학습하기보다는 더불어 참여하고 협력하는 수업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천에 옮기려 하고 있다.

 

그런데 유난스럽게도 학교 내 수직적 구조는 더욱 완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학교 내에서 평교사-부장교사-수석교사-교감-교장이라는 수직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데서 나타난 게 아닌가 한다. 학교에는 협의 절차가 없다. 교사들은 그저 지시와 감독에 익숙해져서 모든 것이 공문에 의해 처리된다. 자주성이 없다보니 무엇 하나 학교가 스스로 하는 것이 없다. 각종 학교의 특색사업도 교육청의 시범사업과 결부하거나 권유에 따르는 것이 보편적이다. 학교마다 개성도 없고 주변 마을의 환경과 어울려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곳도 찾기가 어렵다.

 

심지어 모든 교육과정도 국가 수준에서 결정되어 아래로 전파되어 전국의 모든 학교가 그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지침대로 교육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육행정만이 아니라 교육내용조차 획일적이고 수직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학교에서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머리가 나올 수 없다. 그저 상부의 말을 잘 듣고 실천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4.16 세월호의 비극이 보여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저 가만 있으라는 선내 방송의 지시에 교사들과 아이들은 기울어지는 배 속에서 속절없이 앉아 있었다.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도 상황 파악을 위한 신속한 회의나 대책도 없었고, 학생들도 불안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행동을 하지 못했다. 비약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 교육 구조가 낳은 비극적이고 불행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수직적 사고에 익숙해 누군가의 지도와 지침과 명령이 없으면 불안하고, 그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최선인 것으로 여겨지는 학교 내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교육청과 학교가, 학교장과 교사들이 평등한 관계로 격의 없이 모든 문제를 협의하고, 교사와 학생이 눈높이를 맞추며 배우고 익혀 자신들의 학교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수평적 문화가 우리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 개혁의 시작이자 끝이다. 신발장이 교사들의 이름대로 가나다순으로 하거나, 원하는 대로 놓도록 하는 사고가 언제쯤이면 널리 자리 잡을까?

 

미디어충청 [교육통()]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