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부모와 아이에게 상처 남기는 ‘정성’
새내기 교사 시절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학부모들이 봉투를 슬그머니 책상에 놓거나 손에 쥐어줄 때였다. 학년 초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때로 학교 방문이 많은 시기다. 그런데 학부모와 대화를 끝내고 인사를 나누다 보면 돈이 든 봉투를 직접 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거 조그만 성의 표시에요. 아이들을 맡아 힘드실 텐데...”
“아유 뭘 그렇게 사양하세요? 그냥 조금이에요. 책이라도 사서 보시라구요.”
“정 곤란하시면 아이들을 위해 써 주세요. 조그만 정성인데...”
이런 입에 발린 말과 함께 주는 돈봉투를 사양하거나 돌려주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피곤하게 만든 것은 선배 교사들의 도움(?)이었다. 한 선배 교사는 나를 불러 슬며시 타이르기까지 했다.
“성 선생, 교무실에서 안 받겠다느니, 주겠다느니 하면 서로가 곤란하잖아. 그러니 책상 서랍을 살며시 열어놔. 그러면 주는 사람도 편하고, 받는 사람도 덜 부담스럽고...”
또, 어떤 교사는 슬그머니 오더니 내 학급의 학생 부모인 “어느 누구가 작년에 상당히 성의를 표시했는데”라며 돈봉투를 들고 찾아올만한 학부모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했다. 정말 거북했던 것은 선배가 주선한 식사자리에 반 학부모가 불려나왔을 때였다. 선배는 전임 담임교사였다. 밥과 술을 먹은 것은 그렇다 치고 나중에 헤어지면서 선배가 봉투를 쥐어 주었다.
“괜찮아, 돈 좀 있는 부모가 아이들 잘 가르치라고 주는 건데... 너무 그러지마.”
봉투들은 학부모에게 되돌아갔지만 마음에 담아두기에 거북한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1980년대 당시 촌지라는 이름의 돈봉투에 대해 교무실의 분위기는 부정적이지 않았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굳이 거부할 것까지는 없다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당시의 이런 교무실의 분위기가 거북한 벽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창 시절 치맛바람으로 부유층 아이들이 학교나 교사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던 것을 직접 봤던지라 교사가 되면 절대로 이런 비리만은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에 살던 친지는 이 고민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거기는 참 촌스럽네요. 서울의 웬만한 초등학교는 담임교사에게 봉투로 주지 않아요. 반장 학부모가 통장을 만들어 학부모들의 입금된 돈을 수당처럼 드려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시 대도시의 공립학교 교사들은 목 좋은(?) 곳에 가기 위한 전보이동 점수 따기 경쟁이 승진만큼이나 뜨거웠다. 목 좋은 학교는 부동산 열기가 뜨거운 신개발 주거지역에 따라다니기 마련이었다. 그 참담하고 부끄러운 열기는 구십 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돈봉투 건네기가 교단 전반에서 반성과 함께 추악한 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1980년대 말 전교조의 전신인 교사협의회의 촌지 없애기 운동이었다. 많은 교사들이 절대로 어떤 형태의 선물이나 봉투도 받지 않겠다고 맹서한 계기도 이 운동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학부모들의 찬조금품 모금은 일부에서 지속되고 있고, 교사들의 회식 비용을 학부모가 부담하는 등의 풍토가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일부 교사들은 학부모의 작은 정성으로 치부하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성도 다르게 보면 공정하지 못한 뇌물이다. 좋은 의미의 정성도 결국은 비용을 부담한 학부모의 아이와 그렇지 못한 학부모의 아이로 나뉘게 마련이고 결코 공정할 수 없다.
“절대 선생님을 위해 주는 것이 아니고요, 이건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 사서 나눠주세요.”
수학여행을 갔을 때 버스에 타는 나의 주머니에 봉투를 찔러준 한 학부모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킨 것은 좋았으나,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학부모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받아든 먹을거리가 친구의 부모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안 순간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떠올렸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가난한 부모를 살짝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정성은 결코 정성이 될 수 없다. 교육은 교사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서 시작된다. 교사로서 우리는 자존심과 양심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한다.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