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교육 불평등 심화된 현실
유신시대인 1974년 이루어진 고교평준화가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한편으로 설득력이 있다. 지금이라면 서울을 비롯해 각 지역마다 자리 잡은 막강한 입시명문고 동문들의 반발을 넘어서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무상급식 하나도 관철하기가 얼마나 험난했던가를 생각해보자. 사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기관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교육 복지인데도 이 사안을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나뉘어 진퇴를 거듭했다.
개혁적 교육의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의 의지와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둘이 서로 죽이 잘 맞아도 ‘교육부 마피아’를 넘어서야 한다. 이들은 주로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교육 관료들인데, 장학사, 장학관 등 교육전문직 출신 관료, 행시 출신의 전통 관료들과 교육개발원, 교육평가원 연구원과 교대, 사대 교수 등이 서로 교육부와 그 산하기관의 각종 직위를 싸고돌면서 커넥션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장단기 교육정책을 대부분 주무른다.
교육부 마피아가 어떤 의지를 갖고 개혁안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들은 교육을 개혁한답시고 내놓은 핵심 정책이 ‘교원평가’였다. 이 정책은 개혁의 주체 또는 실천자가 되어야 할 교원을 개혁 대상으로 삼았다. 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적 교사들을 현장에서부터 이간질한 교묘한 정책이었다. 학교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망을 교사들에게 전가해 ‘못된 교사’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인 것처럼 교원평가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원평가는 교사들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고, 학부모에게는 실망만 주었을 뿐이다.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17개 시도에서 진보로 분류된 교육감이 무려 13명이나 당선되었다. 많은 국민이 여전히 교육개혁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보여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이들 교육감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감들은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을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고 교육청에 막무가내로 떠넘기는 정부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1천억 원을 시·도 교육청이 떠안아 그 중 1조2천억 원은 지방채를 발행해야 했다. 전국의 교육청 부채가 무려 10조8천억 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정부는 예산을 줄만큼 주었으니 알아서 편성하라며 배짱이다. 한 마디로 진보교육감 길들이기다. 진보 교육감들의 추진하는 각종 교육 복지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이는 것이다. 교육감이 개혁적 의제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뒷받침해주어야 가능한 것으로 교육부와 교육감이 한 통속이 되어야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장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대체로 좋은 정책이란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반영되어야 하고, 이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개혁의 주체는 교사와 학교장이다. 교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학교장들은 교육청과 교사들을 잇는 중간관리자로서 이들의 적극적인 사고가 정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진보 교육감의 혁신학교는 교육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교육청의 의지로 추진이 가능하지만, 학교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혁신학교는 무엇보다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 바탕을 이루어야 하는데, 현재 승진제도 아래서는 그러한 사고를 가진 교사들이 학교장이 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장뿐만 아니라 교사도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잘못하면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최근 학생인권 보장의 측면에서 두발의 자율화를 시행하라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시가 있었지만, 많은 학교는 학생회를 형식적으로 개최하고 과거와 같은 두발 규정을 시행했다. 대체로 학교장과 교사들은 두발이나 복장에서 보수적인 태도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교사들의 의식이 개혁적 의제를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자면 결국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교육부장관, 교육감, 학교장, 교사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하며, 여기에 학부모들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관건이다.
올해는 김영삼 문민정부의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시행된 지 만 20년이 되는 해이다. 이 개혁안은 이후 나온 모든 교육정책의 바탕이 되어왔다. 교육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생기고, 학교생활기록부가 도입됐으며, 수준별 수업과 방과후 학교가 활성화되었다. 그런가하면 고교를 다양화하자는 취지에서 특목고도 확대되었고, 자율형 사립고도 제안됐다. 또한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기조로 펼친 정책들은 더욱 치열해진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폭증, 자살학생 증가 등 기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교육 불평등은 더 심화되었다. 이제 5.31 교육개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진정한 개혁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는 시대가 펼쳐졌으면 한다. 결국 우리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있다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국민이 해야 할 일의 하나는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