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사회 양극화 부추기는 특수목적고
고교평준화 이전, 우리 사회의 입시 명문고라 불리던 서울의 세 개 고교가 1972년에만 서울대에 진학한 숫자는 총 793명으로 전체 진학 정원 3,110명의 4분의 1이나 됐다. 지금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쏠림이었다. 이런 쏠림은 우리 사회의 주요 요직을 특정 학맥이 장악해 부패와 부조리를 낳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런 학맥 권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두터워지고 결속력이 높아 견제가 어렵다. 이것이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 주요 근거 중 하나였다.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이들 학교들의 위세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 틈을 비집고 새로운 입시 명문고로 부상한 것이 외국어고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4년 대원외국어고를 필두로 1990년 한영, 과천외국어고, 1992년에 명덕, 이화, 청주, 중산, 경남외국어고가 문을 열면서 웬만한 대도시에는 외국어고가 들어서서 어느덧 31개 교가 들어선 상황이다.
원래 특수목적고는 학생들의 특별한 재능을 살리기 위해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편성해 운영되는 학교로 학생 선발권을 갖는다. 외국어고의 존립 목적은 탁월한 외국어 영재를 발굴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인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존립 목적은 타당하며 목적에 맞게 교육과정이 제대로 집행되었을까? 국회 유기홍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외고․과학고․영재고 진학현황’ 자료를 보면 외국어고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전국 31개 외국어고에서 동일 어문계열 진학자가 31.3%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졸업생의 7.6%(2,168명)는 이공계열로 진학을 하는가 하면 의약계열도 1.7%(491명)나 되었다. 이는 전공일치 진학률이 90%를 넘는 과학고나 영재고와는 뚜렷하게 다른 경향이다. 세계화에 앞장서는 어학 영재를 길러내겠다는 교육 목표라면 당연히 대학도 같은 어학계열로 진학해야 하는데 무려 70%의 학생들이 다른 길로 가고 말았다.
또, 이들 졸업자들의 사회 진출에서 두드러지는 분야를 보면 외국어고가 세계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진출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법조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머지않아 외국어고 출신들이 주축 세력이 될 것이라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2013년 기준 대원외국어고 출신 검사만 44명). 더불어 각종 고위공무원 시험에서도 다른 고교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선발권이 주어진 외국어고들은 각 지역에서 학습 우수자들을 모을 수 있는 데다, 각종 시험마다 영어의 비중이 유달리 큰 이 나라 실정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이 사회 요직을 독차지하면 6~70년대 입시 명문고 출신들처럼 학맥을 중심으로 파벌을 조성하여 패거리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특히 상당수가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계층적 동질성이 강한 외국어고 출신들이 요직을 독과점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고를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외국어고가 없어도 우리 교육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3년 과정으로 외국어에 얼마나 능통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며, 또 외국어에 능통하다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당장 어디에 취업할 수 있겠는가? 결국 대학에 가거나 외국의 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외국어 실력은 일반고에서도 충분히 길러낼 수 있다. 굳이 외국어고를 유지하려는 것은 내 아이만은 일반 아이들과 다른 계층으로 키우고 싶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특수목적고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일반고들이 입시 경쟁에 더욱 매달리지만 선발권 특혜를 받는 학교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이제 외국어고는 일반고로 전환해 사회적 위화감을 해소해야 한다. 특히 학맥 중심의 패거리 문화로 계층의 벽을 두껍게 쌓고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특수목적고는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도 존립 목적을 잃어버린 외국어고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