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23. [성광진] 유신시대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것
좌편향의 포장
1972년 유신시대가 열릴 때 사춘기가 시작됐다. 그 시절 또래의 대부분은 대통령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 유신의 대통령 박정희는 나라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거룩한 인물이었다. 그 누구도 거룩한 그 분을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러다 국가원수모독죄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끌려갔다.
국사와 사회교과서는 유신을 찬양하고 대통령의 업적을 치장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방송과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마음에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사람은 오로지 한 분으로 그의 평안을 기원했다. 반공과 건설이라는 구국의 신념으로 자신을 희생해온 그 분은 학교의 교무실마다 동사무소마다 웬만한 사무실에는 다 모셔져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살펴보고 계셨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대한뉴스를 통해 그 분이 자상하게 모든 국민들을 보살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영화보다 감동이 더 밀려왔다. 그래서 그의 허무한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또 여대생과 여가수가 어우러진 술자리에서 부하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고 그가 이루었다는 업적을 기렸다.
그의 시대에 교육받은 대로 우리는 그가 산업화를 이룬 위대한 지도자임을 굳게 믿었으며, 그가 군대를 이끌고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뒤엎었지만 쿠데타가 아닌 위대한 혁명으로 알았다. 4.19의거 이후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노리는 상황에서 허구한 날 데모나 하는 혼란을 걱정한 나머지 나라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5.16혁명을 일으켰다고 배웠다. 당시 4.19는 의거였지만 5.16은 혁명이었다. 국사 선생님은 5.16에 대해 우리 민족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한 위대한 혁명으로 힘주어 가르쳤다. 그리고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평화 통일이라는 과업을 이루기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전히 온 마을마다 붉은 글씨로 반공에서 멸공으로 더 크게 써 붙였고, 새벽이나 저녁에 산에서 내려오는 이는 간첩으로 신고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분위기였다.
그 분은 국민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이 싫어서 노래나 영화도 일일이 간섭해 금지곡과 상영불가가 남발됐다. 또, 머리가 길어서 퇴폐적인 남자로 보일까봐 잘라주는 세심한 분이었고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까지 걱정하는 지도자였다.
누군가는 그가 산업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는 공적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 발전은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흙을 파며 평생을 살아온 농부들과 기름밥을 먹으며 온 삶을 희생해온 노동자들은 이 나라에서 경제 발전의 주체가 아닌 별 볼 일 없는 도구에 불과했단 말인가? 수백 만 공돌이와 공순이가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지만 그들이 타워팰리스를 들어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수백만 수천만의 노동자와 농민이 땀을 흘렸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고 타워팰리스가 생겨난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노동자, 농민에 대해 얼마나 올바르게 평가하고 대접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슬퍼진다.
지금의 역사교과서도 민주화를 위한 희생과 노동자, 농민들의 노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하물며 이제는 역사교과서의 서술이 좌편향이라는 이유로 검인정 체제를 국정으로 정부가 직접 제작하겠단다. 1970년대의 유신교과서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느껴지는 것은 지금의 대통령이 그의 딸이라서 일까? 친일세력에 대한 서술과 유신시대를 포함한 군부독재 시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바꾸어보고 싶은 마음을 좌편향이란 말로 포장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올해는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지 43년이 되는 해이다. 아직도 유신의 그림자는 이 시대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