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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광진] 아이들의 머리에 자유를 허락하자
두발규제는 일사불란한 복종 강요
이발소에서 머리를 삭발하면서 감정이 복받쳤던 적이 있다. 첫 번째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이고 두 번째는 군대에 입대하면서였다. 과거와의 단절과 함께 새로 맞이하는 세계가 만만치 않은 무게의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시점이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머리 모양에 제한이 없고, 대학생도 자유로운데 오로지 중·고등학생들에게만 두발을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중등학교에서는 학생부 교사들이 수업하는 교실까지 들어와 아이들의 머리 검사를 해 벌점을 준다. 심지어는 머리를 깍지 않고 버티는 학생들은 징계까지 당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의 여러 규제 중에서 가장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두발 규제이다.
도대체 머리를 깎아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아이들의 머리가 단정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머리를 풀어놓으면 놀기 좋아하는 녀석들만 지원해서 학교 분위기를 망친다. 머리를 잘 잡으면 확실히 달라진다. 아무래도 머리 규제가 약한 학교로 노는 애들이 많이 지원하니까.”
지나친 머리 규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돌아온 어느 일반고 학교장의 말이다. 이 논리는 규제에 찬성하는 교사들의 주장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사 년 전이었던 것 같다. 교육청에서 학생 두발과 관련해서 학교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장이 자율적인 규제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거의 스포츠형의 군인과 같은 두발을 요구하는 당시의 학교장도 어쩔 수 없이 이 지침에 따라 학생들과 교사들의 설문을 받았다. 학생들의 80%가 완전한 자유보다는 머리가 이마를 덮는 수준에서 완화를 요구했다. 대체로 학생들의 결정은 생각보다 상당히 보수적이고 타협적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의 60%는 지금 그대로를 바랐다. 학부모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에서는 교장과 학생부장 등이 나서 학부모 운영위원들과 학부모회 임원들을 설득하여 지금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유도했다. 학생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 학교 교사들의 의사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교사들 다수도 학창 시절의 가장 큰 불만으로 두발을 꼽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 감독하게 되자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결국 두발의 규제는 아이들을 통제 시스템 속에 가두어 보다 쉽게 제어하려는 교사들의 욕구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두발의 규제는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의 도화선으로 서로간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한다. 더욱이 학력 경쟁 때문에 거북한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부정적 시각을 더하는 것도 바로 이런 규제 때문이다. 학교가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두발 규제부터 아이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라면서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군인과 같이 교사들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약했던 박정희는 메이지 유신을 모방하여 1970년대 유신시대를 열었다. 비판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던 유신헌법으로 무장한 국가는 성인들의 장발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가가 성인들에게 직접 가위를 들고 긴 머리를 자르고 경범죄로 처벌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차는 일이지만 당시 통치자는 무엇을 바라고 머리를 규제했을까? 유신시대에 국민이란 대통령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러한 머리 규제도 뒤따랐던 것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온 짧은 머리의 학생 두발 규제는 일사불란한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통제 시스템의 하나였을 뿐이다. 이러한 두발 규제가 21세기의 학교에서 계속 이어져야만 할까?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