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12. [성광진] 성적을 외치면서 예의를 말하지 말라
학교를 ‘이기적인 정글’로 만든 책임
“요즘 학교에선 예의를 가르치지 않지요? 도대체 아이들이 늙은이를 존중할 줄 몰라요. 저희들도 나이를 먹을 텐데... 늙은이를 싫어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하는 아이들도 있다니까”
한 모임에서 내가 교사라고 하자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예순쯤 되어 보이는 분이 약간 까칠하게 말한다. 은근히 ‘학교에서는 무얼 하느냐’는 비난으로 들린다. ‘무얼 하냐고요? 입시 공부에 매진하고 있지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 때 옆에 있던 오십 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말을 거든다.
“학교만 잘못이겠어요. 가정에서도 교육이 돼야 하는데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서 엉망인데요 뭐. 거기다 요즘에는 핵가족이라고 해서 조부모와 사는 가정이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 아이들이 노인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요.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의란 나이나 지위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배려이자 믿음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믿음은 결국 인간관계로부터 학습하는 것이다. 결국 예의는 교과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에서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학교가 예의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터전인가. 입시 중심 교육으로 학교 또한 사회나 다름없는 경쟁구도가 작동된다. 이기적 사고는 남을 존중하지 않는다. 노인뿐만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고를 갖추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인간 존중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경쟁에 앞서 인간 사이에서는 협력과 조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학교는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나 하나만 잘 되어야 하고, 나 하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이기주의의 정글로 학교를 만든 책임은, 결국 입시경쟁교육을 추구하고 부채질하는 기성세대에 있다.
또, 아이들은 모바일 환경속에서 매스미디어가 생산하는 가치에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동경하는 대상은 항상 젊고 아름다운 이미지에 편향되어 있다. 특히 식스팩을 자랑하는 젊고 싱싱한 육체가 갖는 이미지는 아름다운데 반해 쭈글거리는 주름살로 대변되는 노인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기에 나이 먹은 배우들은 주름살을 펴느라 애를 쓰고 얼굴 고치고 몸을 만드는 것이 예능프로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과거 늙음은 식견을 갖춘 경험의 축적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너도 나도 젊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현실을 시비할 수는 없다.
노인들이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 세태에 대해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 정치사회적으로 세대간 간극이 커질수록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조화를 중시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인간을 존중할 줄 아는 성정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성적 상위자만이 존중받는 학교, 일류 명문대에 가는 것이 목표인 학교의 서글픈 현실속에서 인간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이제 달라져야할 때가 왔다. 성적을 외치는 입으로 예의와 인성을 더 이상 말하지 말라.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5-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