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강제학습, 우리가 꿈꾸는 교육인가(2)
1980년대부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부부가 직장생활로 바쁘고 늦게까지 근무하다보니 학생들만 가정에 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서 교사의 감독 아래 공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심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과외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 자율학습의 존속 이유기도 하다.
또, 학교도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어떻게 하든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이 학습을 시켜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실적주의에 빠져 학생들을 다그쳐 강제적으로 학습을 하게 됐다.
그런데 자율학습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가 문제가 됐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부과되는 전기요금과 교사들의 감독비 등 각종 비용에 대해 각 학교와 감독기관인 교육청은 아무 대책이 없었다. 수업이라면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거출의 명분이 있지만, 명색이 학생의 자율적인 학습이니 공식적으로 학부모에게 부담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처음엔 담임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보상 없이 감독하게 됐다. 그러나 차츰 교사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학교는 불법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찬조금이란 명목으로 학부모에게 돈을 걷는 것이었다. 교사들의 저녁식사 비용조차 학교 예산으로 충당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학부모들은 스스로 교사들의 저녁식사비와 수고비는 부담하겠다며 학부모회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돈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입시가 수능체제로 전환하면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밤 9시까지였던 야간 자율학습이 10시로, 입시를 바로 앞둔 3학년은 11시까지 하는 등 학습시간은 더욱 확대됐다. 심지어 일부 학교는 모의고사 고득점자를 대상으로 입시 특공대를 만들어 자정 넘어서까지 자율학습을 확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찬조금은 소수의 학부모들이 자율적으로 걷어주던 소박한 방식에서 곧 바로 학교가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학교는 직접 학부모들을 모아 입시경쟁에 대해 잔뜩 겁을 주면서 도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사전에 입을 맞춘 몇몇 학부모들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고생하는 선생님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한다고 분위기를 띄운다. 이어 각 학급별로 학부모들이 모여 학교에서 제공한 전체 학부모 명단과 연락처를 갖고 미리 학급별로 할당한 금액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할당액을 미리 알려주고 직접 모금하도록 한 경우도 있다.
이 같은 불법 찬조금 모금으로 인해 90년대 이후 인문계 고등학교는 차츰 타락해 갔다. 1987년 교사협의회로부터 1989년 전교조가 태동하던 시기에 교육민주화 운동의 중심 슬로건의 하나가 ‘촌지 거부’였다. 교무실에 써 붙였던 “우리 학교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신선한 바람은 찬조금 모금과 함께 퇴색하고 말았다.
인문고의 타락은 초등학교로까지 번지고 대도시에서 지방에까지 퍼져 나갔다. 더 나가, 학교가 학부모에게 교사들의 회식이나 수련회 등에도 찬조금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로 자리 잡게 된다. 심지어 지역의 일부 학교는 찬조금액을 교사들에게 할당하고 할당액을 넘어서는 것은 알아서 잡수시라는 덕분에 어느 교사는 승용차를 바꾸었다는 이야기까지 천연덕스럽게 돌아다녔다.
90년대 비합법 상황에서 전교조의 학교 내 투쟁은 바로 찬조금과의 슬픈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투쟁은 동료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들로부터도 환영을 받기는커녕 비아냥거림이나 들어야 했다. ‘받고서 열심히 해주면 될 것 아니냐’며. ‘너나 공짜로 해주면 될 텐데 왜 긁어 부스럼이냐’며.
1990년대 합법화가 간절했던 전교조는 자율학습의 폐지를 위해 전면적인 운동을 벌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찬조금품을 학교에서 수수하는 행위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찬조금품 모금에 반대하며 교사의 수당은 예산으로 편성해 지급하라는 요구를 했다. 동시에 관련 정보를 수집해 이를 폭로하고 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검찰에 고발하는 극단적 조처도 했지만 교육청이나 사법당국도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만 했다.
감사도 유야무야 끝나는가 하면 사법당국도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걷고 자신들을 위해 썼다는 등의 진술을 듣고 무혐의 처분하는 등 성의없는 수사로 일관해 고발자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학부모회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고생하는 교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성의를 표시하는 수준’인데 이를 처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핑계였다. 그러나 학급당 수백만 원까지 모금하여 전체 모금 액수가 억대를 헤아리는 학교까지 나타나는 수준이었다.
당시 사법당국의 적극적 처벌 의지만 있었어도 전국적으로 나타난 불법적 찬조금품 모금은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는데 왜 돈을 내야하냐”는 학부모들의 의식 각성이 이루어지고, 교육당국에서 찬조금품 모금을 없애기 위해 교사들에게 정식으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면서 더 이상 모금의 명분은 사라졌다. 현재 야간 자율학습을 빙자한 찬조금품 모금은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미디어충청 [교육통(痛)] 201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