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강제학습, 우리가 꿈꾸는 교육인가(1)
밤 11시가 되도록 도시 한 가운데에서, 혹은 시골 소도시의 적막한 암흑에도 기세좋게 불을 밝힌 건물들이 있다면 그것은 고등학교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길게는 15시간 동안 교실에서 몸뚱이에 잘 맞지도 않는 책걸상에 앉아 공부하기를 강요받고 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교실에 앉아 문제지와 참고서를 부여잡고 씨름하는 아이들은 억지로 침묵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은 교도소의 간수처럼 복도를 다니며 학생들의 학습을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 전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연출되고 있다.
“선생님 오늘 배가 아파서 자율학습을 빠졌으면 하는데요.”
“야, 또 꾀병 부릴래?”
“어머니한테 전화걸어 보세요.”
“지난 번에 전화했는데, 꾀병 부린다고 절대로 보내지 말라고 하셨어. 임마, 잔소리 말고 빨리 가서 공부나 해!”
매일같이 교무실에서는 담임교사와 학생들 간의 실랑이가 계속된다. 교사들도 지겹고 학생들도 괴로운 자율학습. 감시까지 받으며 억지로 공부한다고 해서 얼마나 성적이 오르겠으며, 그렇게 오른 성적은 과연 보람이 있을 것인가? 도대체 자율적이지 않은 강제 야간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야간 자율학습은 입시 경쟁체제와 부조리한 학교 교육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등학교의 평준화는 40년 전인 1975년 서울을 비롯한 5대 도시에서 시작해 1981년에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물론 소도시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그대로 남았지만 말이다. 고교 평준화의 목적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과도한 입시 부담으로부터 학생과 학부모를 해방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입시 명문으로 불리던 학교가 평준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대다수의 고등학교들이 새로운 명문으로의 도약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입시를 놓고 모든 인문계 고교가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됐다.
새로운 지역 명문을 꿈꾸는 학교들은 학부모들의 욕구를 자극했다.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은 양의 학습으로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도록 하겠다고. 그리고 그 방편으로 내놓은 것이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다. 자연스럽게 학교간 경쟁으로 저녁 8시까지였던 학습시간은 9시로 연장되고, 또 11시까지 연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처음 교직에 들어선 1985년 무렵, 바로 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교육청이 묵인하면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전에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이외의 다른 수업이나 학습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했고, 일과가 끝난 학교의 교정은 텅 비어서 적막했다. 그런데 학교 건물들에 전등불이 켜지고, 학생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교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처음부터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에 모두 참여하게 했다. ‘자율’이라 이름을 붙였지만 ‘강제학습’이었다. 그리고 교사들도 담임 위주로 남아 학생들의 학습을 감독해야 했다.
자율학습이 시작될 때만해도, 학생들과 교사들은 교육과정에도 없는 이 고통스런 밤중 공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질 것으로 봤다. 그런데 지금까지 무려 30년 동안 지속됐다. 얼마나 많은 어린 영혼들이 획일화된 억지 공부로 지치고 흔들렸겠는가. 그리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가. 무릇 교사라면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야간 강제학습, 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교육인가를.
미디어충청 2015-2-25 [교육통(痛)]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