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가교 역할!
교사의 작은 성장이 행복한 교실을 만든다
신탄진초등학교 교사 조혜민
책 제목: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작가명: 김형숙, 손지희 이두표, 천보선 공저
신규로 첫 학교에 발을 내딛었던 미숙함을 조금은 벗어난 2년차 새내기인 내게 올해는 보다 도전적인 한 해였다. 작년에 직면했던 다양한 문제들 때문이다. 발령 나기 전에 여러 선배님들로부터 여러 조언들을 들었지만 근본적인 내 고민을 해결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다. 병을 치료할 때는 병의 근원부터 없애라는 말처럼 내가 처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한 단계 높은 성장을 위해 교육의 기본 이론인 교육학을 선택하게 됐다.
무수한 교육학자 중 비고츠키를 선택한 까닭은 교육의 가장 핵심을 교사와 학생 사이의 협력적 관계임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비고츠키의 이론을 설명하는 책들은 정말 많았지만 처음부터 너무 두껍고 어려운 책을 선택하면 중도에 포기할 것 같아 비고츠키의 교육학을 비교적 쉽게 설명하는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를 선택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하기 정말 힘들었다. 비고츠키에 관해서는 ‘근접발달영역(ZPD)’ 밖에 몰랐던 내게는 생소한 용어, 복잡한 논리가 무척이나 버거웠다. 책 한 권을 깊게 탐독하는 것은 오래 간만이라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책 내용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나와 학생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많은 성찰을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근접발달영역 창출이 교사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중요 요소라는 점이다. 학습과 발달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발달은 절대로 학습을 앞설 수 없으며 학습과의 연속적이며 내적인 연결 속에서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근접발달영역은 학생이 타인(또래, 교사 등)의 도움을 받아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발달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교사는 각 학생들의 근접발달영역을 명확히 파악하고 학생들이 도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특히 학습부진 학생들의 경우 교사가 창출한 근접발달영역을 잘 활용하면 큰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조사해보면 늘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들어간다. 교육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학생들은 필요로 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근접발달영역을 교사가 창출하고 배움을 지원한다면 교사의 전문성 신장뿐만 아니라 교사-학생 간의 굳건한 신뢰 관계 역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올해 수업 중에 각 학생들의 수준에 부합하는 과제를 학생들과 함께 해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업성취도가 크게 올랐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됐다. 아울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학생들은 교사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했다.
둘째, 발달 곡선과 학습 곡선은 불일치하다는 점이다. 작년에 나를 절망하게 했던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은 학습 내용을 왜 몇 번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까?’였다. 작년과 다를 바 없이 우리 학급에는 아무리 학습 내용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전 학년 부분까지 끌어와 차분히 몇 번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는 학생들을 보며 깨진 독에 물을 붓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어렵게 설명했나? 과제가 너무 어려웠나?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왜 이해하지 못해?’, ‘복습 좀 해라!’와 같은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작년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본인들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교사에게 비고츠키는 한 가닥 희망을 던져줬다. ‘아하’경험.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모든 교수-학습과 발달에는 각각의 결정적 순간(‘아하’ 경험)이 있는데 배운다고 당장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어제 깨닫지 못한 것을 내일 깨닫거나 작년에 못한 것을 올해 하게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나는 분수 개념이 너무 어려웠다. 분수 개념을 진짜 제대로 이해한 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수 개념에 대한 나의 ‘아하’경험은 한참 뒤에 이뤄진 것이다. ‘아하’경험이라는 개념은 언젠가 내가 가르친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삶 속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줬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나니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도 나 스스로 보다 침착하고 친절해질 수 있었다. 교사든 학생이든 교수-학습의 결과에 대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 마음의 그릇 역시 키울 수 있어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 여유로운 교육을 지향하게 됐다. 작년에 나와 학생들을 숨 막히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진도’였다. 교과서는 수도 많은데 양도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가르치는 나도, 배우는 학생들도 무척이나 지쳤다. 아침마다 오늘 가르쳐야 할 교과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속으로
‘진짜 징하다.’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놈의 진도 때문에 자연히 학생들의 쉬는 시간과 놀이 시간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수업에 집중 못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속상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납득도 했다. 나라도 빽빽한 수업이 진절머리 나도록 싫었을 테니까. 가르치는 나도 즐겁지 않은데 학생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PISA에서 2등을 할 만큼 우수하지만 정작 공부에 대한 즐거움은 OECD 최하위권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공부에 몸서리치는 학생들을 지켜보며 적어도 나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즐겁게, 부담 없이 공부를 즐길 수 있도록 돕기로 결심했다. 배움의 즐거움을 알 때야 비로소 공부를 즐기고 지속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여유를 가지고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구성할 때 비로소 행복한 학급,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는 내게 굉장히 특별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부족함을 되돌아보게 되고, 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받은 무수한 조언과 도움들은 하나 같이 주옥같아서 나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또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도적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나아가 독서 모임을 통해 함께 비고츠키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들을 발견할 때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학교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되고 보다 넓은 시각에서 학생, 학부모, 학교, 나아가 교육계의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탄탄한 교육관을 바탕으로 하니 자연스럽게 학급 운영에도 흔들림이 없어졌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작년에 비해 굉장히 안정적으로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수업을 할 때도 학생들이 필요로 하고, 즐길 수 있는 수업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고츠키 교육학을 통해 나는 학생들, 동료 교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웠다. 부족한 점이 아직 많고, 앞으로 채울 것이 많지만 내 나름의 교육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비고츠키 교육학을 공부하며,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좋은 선생님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들도 행복하고, 나아가 학교 역시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